소파 방정환의 삶이 얽힌 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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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의 어린 시절 기억부터 그의 영향력 있는 경력, 아동 권리를 위한 활동.

그리고 여전히 세대를 감동시키는 그의 유산에 이르기까지 소파와 그의 삶이 얽혀 있는 어린이날의 매혹적인 역사를 찾아 떠나자.

소파 방정환의 어린시절 추억

방정환은 대한민국의 사회복지사이자 활동가로 평생을 아동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습니다.

1899년 11월 9일 한성 적선방(積善坊) 야주현(夜珠峴,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다동 근처)에서 미곡상을 하던 방경수(方慶洙)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계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1907년부터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어렵게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13년 상업을 하기 원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했으나 1914년 중퇴했다.

방정환이 문학가를 꿈꾸게 된 것은 10살이 되던 1908년 어느 미술가가 그에게 선물한 환등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정환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환등기를 영사하면서 상상의 세계를 영상으로 연출하는 것과 변사 훙내를 내면서 연기를 하는 데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방정환의 어린이 사랑

방정환은 1921년 서울에서  ‘천도교 소년회’를 만들어서 전국을 순회하면서 이야기 꾼으로 강연을 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해 인격을 존중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방정환은  지나치게 상하 관계를 따지는 유교문화에서 사회적인 약자인 어린이들이 천시와 억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1923년에는 ‘어린이’라는 어린이 잡지를 발행하여 아동문학계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방정환은 이 때가 일제 치하 시기였으므로, 조선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인적도 있다고 합니다.

방정환의 동화 구연과 강연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익힌 이야기 솜씨로 어린이뿐 아니라 죄수들에게까지 동화구연을 했습니다.

듣는 사람은 모두 감정이 고조되어 눈물을 흘릴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보였다고 전합니다.

매년 70회가 넘는 동화 구연과 강연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녀야 했는데, 이로 인해서 건강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원래 비만인 데다가 고혈압이 있었는데, 1931년부터 과로가 겹치고 줄담배의 영향으로 지병인 고혈압이 악화되어 1931년 7월 23일 병상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방정환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산은 여전히 한국과 그 너머에 남아 있습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를 위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활동과 전 세계 어린이 권리를 위해 싸운 수많은 다른 활동가들을 계속 기리고 있습니다.

어린이날의 유래

어린이날의 기원은 192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아동복지회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회의에서 참가자들은 어린이들이 그들의 권리와 보호를 강조할 특별한 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결과 10월 첫째 주 월요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날짜와 축하 행사는 국가에 따라 다릅니다.

대한민국의 어린이날은  5월 5일

한국에서는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1922년 4월에 ‘천도교회’는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하였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에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했습니다.

이후 1961년에 아동복지법에서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확정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975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소파 방정환과 어린이날

어린이날의 역사는 한국의 어린이 권리를 위해 평생을 바친 방정환의 삶과 유산과 엮여 있습니다.

방정환의 삶은 사회의 가장 취약한 구성원을 옹호하는 빛나는 모범이었습니다.

그의 유산은 전 세계 사람들이 아동의 권리와 보호를 위해 싸우도록 계속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