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대표 명소, ‘낙생대공원’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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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생대공원은 분당구 백현동 423, 523, 521-5번지 일대의 공원이다.

시민의 보건, 휴양 및 정서 생활에 기여할 목적으로 판교신도시 개발과 함께 조성한 공원이다.

면적은 427,359.9제곱미터(m²)에 이르고, 백현유원지와 연결되어 있다.

분당과 판교일대 내려다 볼 수 있어

전통체험 숲.연못, 체력단련시설, 분당과 판교 일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팔각형 판교정과 낙생정 등의 정자 쉼터 등으로 조성했다.

또한 백현동 삼평동 사송동 일대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고분 5기를 이곳으로 이전하여 성남시 향토문화재 제12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독립만세운동 있었던 곳 조망

이곳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던 낙생면사무소 부근인 낙생고등학교가 조망된다.

그리고 항일의병기념탑이 건립되어 성남출신 의병들이 펼친 항일전신을 기념하고 있다.

낙생은 永樂長生之地에서 나온 말

닉생대공원의 명칭은 낙생(樂生)이었던 데서 유래한다.

고려 충정왕 1년(1349) 4월에 목은 이색의 아버지인 가정 이곡이 고향에 돌아가는 길에 낙생역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낙생(樂生)은 영락장생지지(永樂長生之地)에서 나온 말로 ‘길이 즐겁고 오래 살 수 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영남대로, 판교역과 판교원 있어

낙생지역은 서울과 지방을 이어주는 영남대로 노선으로 판교역과 판교원이 있어서 서울과 지방을 오갈 때 반드시 지나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일반인 뿐만 아니라 일본과 동남아시아의 사신일행은 몰론 임금의 온천행차와 군사훈련 행차 때 영남대로를 이용하였다고 한다.

영남대로의 기능이 지금은 경부고속도로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낙생행궁, 궁안마을도 있어

조선시대에 탄천 일대는 봄, 가을로 시행된 군사훈련의 현장이었고, 임금이 직접 훈련에 참여했기 때문에 낙생행궁(樂生行宮)이 건립되었다. 그 안쪽 궁내동(宮內洞)을 궁안마을이라 부르고, 행궁이 있던 백현동을 낙생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잣나무 고개 백현동(栢峴洞)

마을 뒷고개마루터기에 큰 잣나무가 있어 그 고개를 잣고개라 했다.

재너머 백현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마을이 고개 밑이므로 후에 마을의 명칭이 되었다.

‘잣고개’를 한자화 한 것이 백현동의 유례다.

낙생장과 낙생역 있어

잡월드 앞 부근에는 낙생장과 낙생역이 있었다.

낙생장은 조선후기까지도 큰 규모로 열렸지만 1871년 탄천범람으로 사라진 후 판교장과 분당장이 새로운 장터가 되었다.

2006년 성남문화원이 지명제정 용역사업으로 지역 원로 등의 자문과 성남시 지명위원회 심의를 거쳐 낙생대공원으로 명명하였다.

공원은 2008년 4월에 착공, 2009년 12월에 준공하였다.